혁명, 정상과학, 나는 변화를 원하는가? 머물러 있기 원하는가?

가끔 집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친절한 어르신이 있다. 어떤 때는 손주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 셔틀버스로 향하기도 하고 가끔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늘 친절한 인사와 웃는 얼굴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의 입에서 평소에는 듣지 못하던 한탄조의 말이 나온다.

"이 정권에선 잘 살기 틀렸어! 이 정권이 경제를 망쳐놓아서 말이야!"

아침에 종편 뉴스를 들었는지 아니면 평소 즐겨보는 유투브 채널의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리 봐도 그의 경제형편이 나빠진것 같지는 않다. 집값은 꽤 올랐고 그의 입성도 나쁘지 않다. 지난 정권에서는 잘 살게 되었던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권이 경제를 나쁘게 해서 요즘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졌단다.

하긴 살아오면서 경제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던 70년대가 좋았을까? 그땐 100억불 수출했다고 방송에서 온통 축하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1977년이었는데, 2018년 한국의 해외 수출액이 얼만가 봤더니 오매나! 무려 6055억 달러(675조 7380억 원)란다. 그러니까 40년만에 60배나 커졌는데 말이다.

세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한 거부감 없이 인정하는 말들이 있다. 말하자면 경제가 나쁘다, 취업이 어렵다는 소리, 선진국이 어떻고 하는 소리들이다...또 한 소리가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말하는 것을 진실로 아는 소리다. 하긴 세상이 나쁘다고 욕하는 소리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를 많이 해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지식을 팔던 소피스트를 비난했다. 어쩌면 약간의 뻥을 추가해 돈을 벌던 헤로도토스 같은 이들이 소크라테스가 욕하던 소피스트의 한 사람이었들 거다. 진리가 아닌데도 듣기좋은 소리를 한다고 말이다.

오늘은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독서경영포럼'에서 지난주에 다뤘던 <과학혁명의 구조>의 내용을 조금 다뤄볼까 한다.

저자 토머스 쿤에 의하면 과학혁명은 리니어한 1차원적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당대에 진리라고 인정되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 그것을 쿤은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말하는데 과학자들은 그 진리를 강화시키기 위한 작업들에 몰두한다.

그러니까 정상과학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인정된 진리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노력한다. 목소리 큰 어떤 학자가 쓴 논문을 인용하면 좋은 논문으로 인정되며 학계의 목소리를 강화시키기 위해 애쓴다. 당연히 학생들은 스승의 가르침에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학위를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과학계 뿐만 아니라 요즘 내가 아마추어로 공부하는 역사학계도 마찬가지다. 이미 형성된 역사의 정설은 공고하다. 만약 어떤이가 다른 생각을 발표해도 역사에서 상상이나 가정은 흐름을 바꿀 수 없다. 흐름을 바꾸려면 명확한 근거에 기반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나? 그러니 상식적으로 보면 다른 생각을 해볼만 하지만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간이 흐른 후에 과거를 보면 왜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당대의 일반적 생각으로 보면 정상과학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헬레니즘 시대와 중세를 거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아주 훌륭한 설명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에 아리스타코스라는 사모스 출신의 철학자가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그의 설명은 빈약했고 근거도 별로 없었다.

그에 비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구개념은 아주 뛰어났으며 행성들의 순행과 역행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을 조금은 복잡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중세에 들어와 절대자의 개념을 여기에 도입하면 창조자가 세상을 조금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은 정상과학에 있지 않은 누군가에 의해 소리소문 없이 찾아온다. 케플러는 망원경을 통해 행성을 연구했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 했다. 빛은 입자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자리잡았지만 어느 순간 파동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오늘의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들은 진리 내지는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대세이고 훌륭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을 시간이 흘러간 후에도 진리라고 볼 가능성이 있나? 라고 따져보면? 하긴 이를 제대로 따지는 이도 많지 않다.

최근 30년의 경제발전 과정만 들여다 봐도 우리가 피상적으로 말하는 불황론은 금방 사라진다. 2019년 3050클럽(인구 5천만이상 국가중에서 일인당 GDP 3만불이상)에 가입한 한국의 존재를 보면 이젠 선진국에서는 어떤데! 라는 논리도 버릴때가 되었다.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건 그래서 의미있는 작업이다. 재미는 없고 사람들의 관심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누군가는 있기에 세상은 변하고 발전하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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